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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말에도 상처받는 이유, 뇌는 기억보다 감정을 먼저 저장한다

by newstart8282 2025. 7. 2.

 

"아니, 내가 언제 그렇게 심한 말을 했다고 그래?" "왜 너만 유독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여?"

혹시 이런 말,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혼자 끙끙 앓았던 경험은요? 같은 상황, 같은 말에도 유독 더 크게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순히 '성격이 예민해서' 혹은 '유리멘탈이라서'라고 치부하기엔, 그 속사정이 생각보다 복잡합니다. 놀랍게도 우리 뇌의 작동 방식과 깊은 관련이 있거든요. 오늘은 왜 어떤 사람들은 같은 말에도 더 쉽게 상처받는지, 그리고 우리 뇌가 어떻게 감정을 기억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뇌는 이성보다 감정이 먼저다: 생존을 위한 본능

우리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내용이 이성적으로 분석되기도 전에 이미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난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는 우리 뇌의 편도체(Amygdala)라는 부분 때문입니다. 편도체는 감정, 특히 공포나 불안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위험을 감지하면 즉각적으로 경고 신호를 보내 몸이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하죠.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뱀처럼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것이 진짜 뱀인지, 아니면 그냥 밧줄인지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전에 일단 깜짝 놀라 피하거나 몸이 경직됩니다. 편도체가 "위험할지도 몰라!"라는 신호를 먼저 보냈기 때문입니다. 이후에야 대뇌 피질이 "아, 밧줄이네. 괜찮아."라며 상황을 정리하죠.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과거의 아픈 기억이나 부정적인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면, 편도체는 그 말의 의도나 맥락을 따지기 전에 과거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불러옵니다. 마치 조건반사처럼 말이죠. 그래서 "너는 항상 그 모양이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말한 사람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일지라도, 과거에 비슷한 말로 크게 상처받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당시의 절망감, 무력감, 분노 같은 감정들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며 훨씬 큰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뇌는 사실(fact)보다 감정(emotion)을 먼저, 그리고 더 강렬하게 저장하는 경향 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상담 현장에서 많은 분들을 만나보면,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무심코 들었던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깊은 상처로 남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넌 왜 이렇게 산만하니?", "넌 누굴 닮아 그렇게 센스가 없니?" 같은 말들이죠. 당시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이었을지 몰라도, 반복적으로 듣거나 매우 충격적인 상황에서 들었다면, 그 말과 함께 느꼈던 수치심, 좌절감, 슬픔 같은 감정들이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됩니다. 그리고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들을 때마다 과거의 감정 스위치가 '탁'하고 켜지는 것이죠.

예민함, 상처가 아닌 특별한 능력의 다른 이름

"왜 너만 유독 예민하게 굴어?"라는 말은 상처받은 사람을 두 번 울리는 말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병원 소아정신과 김붕년 교수의 강연에 따르면, 이 '예민함'은 결코 단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더 정밀하게 감각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포착하는 능력 일 수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 뛰어나고 창의적인 사람들 중에는 유독 예민한 기질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극에 민감하고 감정의 진폭도 커서 쉽게 상처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예민함이 뛰어난 공감 능력, 직관력, 그리고 창의성의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을 다르게 해석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역사 속 위대한 예술가나 과학자들 중에는 남다른 예민함과 그로 인한 내면의 고통을 창작 에너지로 승화시킨 인물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고통은 단순히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탐구하고 표현하는 주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예민한 사람이 창의적인 것은 아니며, 예민함이 주는 고통이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민함을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그 안에 숨겨진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제가 유독 사소한 말에 잘 상처받고 오래 담아두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나는 이렇게 감정적일까?", "좀 더 둔감해졌으면 좋겠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뇌 과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것이 단순히 제 개인의 나약함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저의 이런 감수성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도움을 주고, 글을 쓰거나 다른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더 풍부한 영감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감정을 빚는다: 애착의 중요성

우리가 특정 말이나 상황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바로 '초기 애착 경험'입니다. 김붕년 교수는 생후 36개월, 특히 18~36개월 사이에 주 양육자와 맺는 애착 관계가 아이의 정서 조절 능력과 사회성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 을 미친다고 강조합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세상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감을 형성하고,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비교적 잘 조절하며 회복하는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반면, 불안정 애착이나 혼란된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거절이나 비판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타인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습니다. "피부는 곧 뇌다"라는 말처럼, 어린 시절 따뜻한 스킨십과 정서적 교감은 뇌 발달 그 자체이며, 이후 세상을 살아가는 감정적 토대가 됩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충분한 관심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방임되거나 거절당한 경험이 많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의 사소한 무관심이나 비판적인 말 한마디에도 자신이 버려지거나 거부당했다는 극심한 불안감과 고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의 상황 자체보다는 과거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와 감정이 재현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경험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결정짓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모든 사람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을 경험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고, 고통의 경험을 통해 타인과 사회에 더욱 깊이 공감하고 기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뇌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은 전두엽 기능이 더욱 활성화되어 정서적 통합과 자기 인식 능력이 발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상처받은 마음 돌보기: 감정 조절 능력 키우기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뇌에 새겨진 감정의 기억들 앞에서 속수무책일까요? 다행히도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뇌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고, 꾸준한 노력을 통해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1. 내 감정 알아차리고 인정하기 : 어떤 말이나 상황에 유독 마음이 힘들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라고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로 화내다니, 내가 너무 예민한가 봐"라며 스스로를 비난하기보다 "아, 이 말을 들으니 예전에 비슷한 일로 속상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화가 나네"라고 자신의 감정과 그 원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2. 자동적 사고 점검하기 : 특정 말에 상처받을 때, 우리는 종종 그 말을 확대 해석하거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적 사고'에 빠지곤 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이 부분은 좀 더 보완해야겠네요"라고 말했을 때, '나는 역시 능력이 부족해', '상사가 나를 싫어하나 봐'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때 한 걸음 물러서서 "정말 그럴까?",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라고 질문하며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보세요.
  3.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 표현하기 : 상처받은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는 것은 능사가 아닙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거나, 글쓰기, 그림 그리기, 운동 등 자신만의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해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붕년 교수가 언급한 문학, 예술 활동, 놀이 등은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의 정서 조절과 창의성 발달에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4. 자기 연민 갖기 : 우리는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스스로에게는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자신을 비난하기보다, "그럴 수 있어", "힘들었겠다"라며 따뜻하게 다독여주는 자기 연민(Self-compassion)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전문가의 도움받기 : 과거의 상처가 너무 깊어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주저하지 말고 심리 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전문가는 당신의 이야기를 안전하게 들어주고, 상처의 근원을 탐색하며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같은 말에도 유독 당신만 상처받는다면, 그것은 당신이 유별나거나 나약해서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당신의 뇌가 과거의 감정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고, 어쩌면 남들보다 더 세상을 섬세하게 느끼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예민함을 약점이 아닌 특별함으로, 상처를 성장의 동력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하고, 또 빛나는 가능성을 품고 있을지 모릅니다.

FAQ

Q1. 뇌가 감정을 먼저 기억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A1. 어떤 정보를 접했을 때,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반응이 먼저 일어나는 뇌의 처리 방식을 의미합니다. 특히 과거의 부정적 감정과 연결된 자극에는 더욱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Q2. 예민한 성격은 바꿀 수 없나요?

 

A2. 예민함은 기질적인 부분도 있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조절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민함을 단점으로 보기보다 섬세함과 공감 능력의 원천으로 이해하고, 감정 조절 훈련을 통해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Q3. 과거의 상처는 현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요?

 

A3. 특히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애착 손상은 성인이 된 후에도 대인관계나 감정 조절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현재 겪는 어려움이 과거 경험과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Q4. 같은 말을 들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이유는 뭔가요?

 

A4. 개인의 과거 경험, 애착 유형, 기질, 현재 심리 상태 등이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말이라도 각자의 경험과 감정 필터를 거쳐 해석되므로 반응이 다를 수 있습니다.

 

Q5. 상처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A5.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스스로 탐색해보고, 비난하기보다 이해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Q6. '외상 후 성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A6. 큰 정신적 외상을 겪은 후, 그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경험하고 성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거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커지는 등이 예입니다.

 

Q7. 감정 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이 있나요?

 

A7. 명상, 마음챙김 연습, 일기 쓰기, 규칙적인 운동, 예술 활동(그림, 음악 감상 및 연주, 글쓰기 등)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도 중요합니다.

 

Q8. 심리 상담은 어떤 경우에 받는 것이 좋을까요?

 

A8. 과거의 상처나 현재의 감정 문제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혼자서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질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객관적인 시각과 전문적인 방법으로 회복을 도울 수 있습니다.